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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전병두목사 칼럼] 한참 어리네요


한참 어리네요

교회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 늘 하던대로 처음에는 영어로, 그 다음은 한글로 간단한 인사를 하였습니다. “헬로우, 디스 이즈 패스트 전”(안녕하세요, 전목사입니다.“ 이어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유진 중앙교회 전병두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잠간의 침묵이 흐른 후 라인 저편에서 한국 말이 들려 왔습니다. ”거기... 한국 교회 맞나요?“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예배드릴 교회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가 이 쪽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아, 그러시군요. 네,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낭낭한 음성으로 보아 전화하는 분은 50대 쯤 되어 보이는 부인 같았습니다. 다시 저에게 물었습니다. ”전화 받는 분은 목사님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목사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의외의 질문이었습니다. 목회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대뜸 나이를 묻는 전화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나이를 묻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사이가 아주 가까운 경우에는 예외이지만 그때도 보통은 자신의 나이를 먼저 밝히고 상대편의 나이를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하지만 관례와 상관없는 경우라도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목회자로서는 나이가 좀 든 편입니다. 예순이 넘었습니다...“ 대답을 하고 나서도 혹시 상대편에게 실망을 주는 대답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되었습니다. 요즘 성도들은 젊고 패기찬 목회자를 선호한다는 말을 자주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다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직 한참 어리네요“ 이 말은 의외였습니다. 예순이 넘은 사람에게 한참 어리다고 한다면 대화를 하는 분의 연세는 얼마나 될 까 궁금하였습니다. ”전화하시는 분은 저보다 연세가 훨씬 높으신 가 봐요...“ ”네, 구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음성으로 보아서는 예순도 안되어 보이는 데요? 하여간 반갑습니다. 어르신께서 오시면 반갑게 맞이하겠습니다. 주일 예배는 매주 오전 열 한시입니다. 꼭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 놓고 잠시 상념에 잠겼습니다. 어린 나이라는 말을 들은 지가 워낙 오래 되어서 그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전도사로 작은 시골 교회를 맡아서 단독 목회를 할 때가 20대였습니다. 주변에서 목회를 하던 분들은 모두 저 보다 연상이었습니다. 어떤 모임에 가도 당연히 나이가 어린 그룹에 속하였습니다. 30대 초반에 목사 안수를 받고 노회에 참석했을 때도 가장 어린 나이의 목사였습니다. 섬기는 교회의 장로님들이나 집사님, 권사님들은 당연히 연상의 어른들이었습니다. 나이 어린 목회자, 젊은 목회자라는 말은 당연히 저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는 이 말이 더 이상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목회자들도 저보다 젊은 분들로 메워졌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은 조용히, 그리고 소리없이 시야에서 멀어져 가기만 하였습니다. 목회자를 찾는 교회의 광고란에는 연령 제한이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에 관해서라면 어느 교회라도 지원할 수 있는 황금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후배 들인 것을 보고 깜짝 깜짝 놀라곤 하였습니다. 높아만 가는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마음을 헤아렸는 지 어느 날 과묵하기만 하던 집사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은 아직 이 십대 청년같이 젊으십니다. 목사님은 연세와 상관없이 일을 잡으면 끝까지 해 내시는 것은 젊다는 증거이지요“ 그 집사님은 그 일을 해 내느라고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내었는 가를 안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다 마칠 때까지 교회 출입문을 수없이 보곤 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전화한 분은 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어리네요“라는 말을 잊어 버리고 있던 어느 주일에 구순을 바라보는 장로님과 전화를 거셨던 그 부인 권사님이 환한 웃음을 띠우며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 것처럼 기뻤습니다. 신 장로님은 조심스럽게 몸을 가누며 걸어셨지만 권사님은 아무 불편함 없이 움직이셨습니다. 장로님 내외 분이 교회에 등록을 하신다면 대부분 청년과 젊은이들로 구성된 우리 교회에서 가장 연세 높으신 어른이 될 것이고 저는 한참 어린 목회자가 되어 열심히 섬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찼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로님 내외 분이 거주하는 곳에서 교회까지는 고속 도로를 달려도 사, 오십 분 동안 운전해야 하는 먼  거리였습니다. 교회에 발을 들여 놓으 신 후 매주 거르지 않고 교회 출석하신 지가 이미 한달이 넘었습니다. 

아내는 텃 밭에서 따 낸 싱싱한 호박을 정성스럽게 봉지에 넣어 권사님께 드리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권사님, 저희가 직접 기른 호박입니다. 정성으로 받아 주세요...“ ” 고마워요, 지난 번에 주신 것도 한 주간 동안이나 장로님과 함께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러시군요. 제가 청국장을 잘 담습니다. 다음 번에는 청국장을 드릴께요.“ 장로님 내외분은 따뜻한 미소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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