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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재미총회 40년] 18. 재미총회의 초기 임직자들


18. 재미총회 초기 임직자들

                                                                                           나삼진 목사(Evangelia University 교수)

재미총회 설립자들은 두 갈래로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하였다. 일찍이 유학생으로 와서 미국에서 신학을 하고 안수를 받아 미국장로교회에 속하였던 박재영 목사와 선교사로 파송받아 한인교회를 목회하던 신현국, 김만우 목사의 두 부류였다. 이러한 신분상의 차이가 같은 재미총회를 섬기면서 미묘한 분위기를 형성하였고, 한국 총회와의 관계에서 은연중에 작용할 때가 있었다. 훗날 선교사 신분을 재미총회 회원권을 주는 문제도 당시 한국교회 각 교단 선교정책의 문제이기도 하였지만, 재미총회 안에서의 미묘한 분위기가 작용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재미총회가 조직된 후 목사 임직을 받은 이들도 생겨나 《재미총회 10년사》에는 첫 10년 동안 목사 안수자 명단을 담고 있다. 이들은 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었는데,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의 주류신학교에 유학 온 학생들, 이민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신학교 졸업생들, 그리고 재미총회가 설립한 재미고려신학교를 졸업생들이 그들이었다.

재미총회에서 가장 먼저 제2회 총노회에서 임직을 받은 이는 이민으로 미국으로 온 조성과 배명환이었다. 제3회(1987) 총노회에서 박대근, 이종은, 이현봉이, 제4회 총노회에서 심상법, 정남식, 박종규, 제4회 동부노회에서 정태영, 제6회 총회에서 박태련, 최병걸이, 제7회 총회에서 김유찬, 김용훈, 정태근, 제8회 총회에서 권오성, 제9회 총회에서 김기석, 하성만, 김형수, 전병국이 목사 임직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노회에서 목사 임직을 받음에 따라 김은태, 한무가 제12회 동부노회에서, 박기흠, 이학재, 이신열, 김건용, 박민찬, 이은환. 양봉현, 송경식, 윤덕곤이 제14회 동부노회에서, 김병호가 제2회 중부노회에서, 박순철, 백승철이 제11회 서부노회에서 목사 임직을 받았다. 첫 10년 동안 재미총회와 산하노회에서 목사 임직을 받은 이들은 모두 36명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초기 재미총회와 산하노회에서 목사 임직을 받았지만, 모두 재미총회 산하교회에서 목회를 한 것은 아니었다. 재미총회의 교회 수가 적었고, 규모있는 교회에서 목회 훈련을 받을 기회가 적었으며, 이들이 장차 목회할 수 있는 교회 수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용훈 목사는 열린문장로교회에서 EM을 담당하다가 담임목사가 되어 미국의 대표적인 한인교회로 성장시키고 2024년 조기 은퇴하였고, 정태근 목사는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건실한 교회를 목회하고 은퇴하였다. 이헌봉과 김기석은 선교사로 파송되었고, 박대근, 전병국은 훗날 재미총회 총회장을 지냈다.

재미총회 안수자들 가운데 이현봉 목사는 제4회 총회에서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어 북한 동포를 위한 사역을 하다가 정체불명으로부터 독침으로 살해되었고, 오랜 후에 북한 인사의 전화를 받았으니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순교는 교회의 공식적인 인정이 필요한 것인데, 그의 지도로 사역을 하였고, 이후에도 특별한 애정으로 돌보았던 김만우 목사가 제40회 총회 기념 역사 세미나에서 ‘순교’ 사실을 적시하였는데, 이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심의와 결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재미총회에서 안수자들 중에 유학을 마친 후 목회를 하다 귀국하여 한국교회에 목회자로 자리잡은 이들도 있었다. 최성은 목사는 휴스톤한빛교회를 시무하다 남서울교회의 청빙을 받아 시무하다 최근 부총회장에 피선되었고, 김은태 목사는 유학 후 뉴저지제일한인교회를 시무하다 부산 엄궁교회의 청빙을 받아 시무중이며, 김기주 목사는 김포 전원교회, 김성곤 목사는 부산 대양교회의 청빙을 받아 목회하고 있다.

한국으로 귀국해 교수로 봉사한 이들도 여럿 있었는데, 심상법은 학위 후 총신대학교에서, 이학재는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내다 은퇴하였고, 이신열은 고신대학교에서 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첫 10년 동안 재미총회에서 안수받은 목회자들 36명 가운데 타교단 교회의 청빙을 받아 떠나거나, 연금 제도에 매력을 가져 주류교단을 찾아간 경우들도 있고, 몇 사람은 불미스러운 일로 재미총회를 떠난 경우도 있다. 재미총회가 더욱 성장하고 내실을 갖추어 목회자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목회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사진: 제3회 총노회에서 임직 받은 박대근 목사와 이근삼, 박재영, 곽삼찬 목사(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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