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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주요 사건열전 - 제1차 콘스탄틴노플 공의회



제1차 콘스탄틴노플 공의회

제 1차 콘스탄틴노플 공의회가 열린 성 이레네 교회


325년 니케아 공의회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둘러싼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 싶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는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내쫓았던 아리우스파 주교들을 3년 만인 328년에 다시 측근으로 불러들인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 당시 '말씀, 혹은 성자가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다가 주교들의 분노를 사 단상에서 끌려내려졌던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는 공의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고 다시 주교직을 맡았다.

아리우스파 주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리우스주의와 정통 신앙의 기조가 다르지 않으며, 아리우스파가 정통파의 중상

모략을 받아 이단으로 정죄되었다'며 황제를 설득했다.

 이에 공의회가 끝난 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아리우스의 사면 운동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아리우스는 아리우스파


주교들이 연대 서명한 사면 복권 탄원서를 여러 차례 황제에게 보냈다.

이외에도 아리우스주의를 추종하던 여러 주교들이 복권되었다.이때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니코데모스 주교인

유세비우스이다.

아리우스와 친구였던 유세비우스 주교는 성자종속설 경향에 기울어져 있던 동방 주교들의 세를 규합해 정통파인 니케아


신경의 옹호자들에게 맞선다. 335년 티루스 시노드, 340년 로마 시노드, 341년 안디옥시노드와 로마 시노드 등 교회

회의들이 잇달아 열리고 친아리우스파와 정통파가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 계속된다.

여기에 337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사망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한다. 제국의 동방은 니케아 공의회 선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주교들을 지지하는 콘스탄티우스가, 정통파 주교들이 주로 있는 서방은 콘스탄스가 각각 다스리게 된다.  교리상의

 분열이 정치적 분열과 겹쳐져 대립이 심화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로마 주교인 율리오는 동방과 서방 주교들이 함께 참석하는 공의회를 사르디카(오늘날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342년 혹은 343년에 소집된 사르디카 공의회에는 대략 서방에서 90명의 주교가,

 동방에서는 80명의 주교가 참석한다. 하지만 공의회는 참석 주교들의 자격 문제로 삐그덕거리더니 동방 주교들이 불참을

 선언하고 만다.

반쪽이 된 사르디카 공의회에서 서방 주교들은 니케아 신경을 재확인하면서 동방 주교들이 이전에 단죄한 아타나시우스


주교를 복권시킨다.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공의회 때 정통파를 이끈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주교 밑에서 집사로

있으면서 정통파가 승리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된 후 아리우스파 등 반대파들에 밀려 여러

차례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정통신앙을 끝까지 수호한 지도자다. 또한 신약27권을 정경으로 인정한 결정적 원인제공자

이기도 하며,  삼위일체 교리의 토대인 '아타나시우스 신경' 저자이기도 하다.

한편 동방에서는 성자가 성부에 비해 열등하다는 급진적 아리우스파의 주장은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배격하지만


동시에 성자와 성부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니케아 공의회 표현도 반대하는 다른 표현 양식을 만들어 냈다. 성자는 성부와

같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으로서 본질이 같지 않고 유사하다는 '유사본질'설이 그것이다. 이 주장을 반(半)아리우스주의

(Semi-Arianism)라고 부른다. 아리우스 주장을 절반쯤 따른다는 뜻이리라. 이제 성자의 신성을 둘러싼 논쟁은 동일본질

(니케아 정통파), 유사본질(반아리우스파), 성자종속(아리우스파)로 삼분된다.


◇리미니-셀레우키아 공의회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세를 규합한 유사본질파 주교들은 제국의 황제 플라비우스 율리우스에게 압력을 가해 다시 한번

공의회를 소집하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359년 두 곳에서 회의가 열리게 된다. 서방에서는 이탈리아 리미니, 동방에서는

 오늘날 이라크 땅인 셀레우키아에서다. 리미니에 모인 서방 주교들은 400명이 넘었고, 셀레우키아에 모인 동방 주교들

또한 약 150명이나 됐다. 참석자 수로만 본다면 가장 규모가 큰 공의회였다.

유사본질파 주교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공의회에서 관철될 수 있으리라고 희망을 품지만 황제는 오히려 또 다른 안을

제안한다. '성자는 성경에 따라 성부와 유사하다'는 정식(定式)을 주교들에게 합의의 초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말하자면

성경을 전거로 내세우며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합의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단지 제안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안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교리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교리 일치를 통한

주교들의 화해가 또한 제국 질서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압력을 행사해 리미니와 셀레우키아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 550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내고는 360년 1월 1일에 제국에서 마침내 교회 평화가 회복됐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부와 성자의 신성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 두 파에서 네 파로 나뉘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니케아파

(정통파), 유사본질파(반아리우스파), 유사파(리미니-셀레우키아 공의회 지지파), 그리고 엄격한 아리우스파로.


◇카파도키아 교부들과 성령피조설파

한편 3세기 중엽 소아시아 오늘날 터키 고원지대인 카파도키아에는 유명한 교부(敎父, 고대와 중세의 저명한 교회 


 '교부'라고 부름) 삼총사가 있었다. 카이사랴의 주교 바실(329/331~379), 나지안즈의 주교 그레고리


(329/339~389/390)  그리고 니사의 주교 그레고리(335/340~394/395)였다. 이들에게서 성부와 성자의 신성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핵심 개념들이 다듬어져 나왔는데, 본성(본질 또는 본체)과 위격의 구별이 그것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신적 본성 또는 본질이 같지만 위격으로 서로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삼위일체의 성령에 관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성령을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이설(異說)이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성령피조설파(Pneumatomachi)이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한 신경에 "또한 성령을 믿나이다"라고만 돼 있어서

성령과 성부 및 성자와의 관계가 확실치 않은데다 아리우스파가 성령 또한 성자와 마찬가지로 피조물로 이해한 것 등이

성령피조설파가 생겨난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성령피조설파는 마케도냐파(Macedoniani)라고도 부른다. 이 설을

내세우는 이들이 360년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마케도냐의 추종자들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마케도냐가 정말로

성령피조설을 내세웠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379년 테오도시우스가 로마제국 황제가 된다. 훗날인 392년에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유일한 합법적

종교로 선포하게 되는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교리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교회가 분열에서 벗어나 일치를 이루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공의회를 소집한다. 이렇게 해서 소집된 공의회가 381년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개최된 두 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1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이다.

회의에서는 최종적으로 기존의 니케아 신조에 성령(聖霊)에 대한 내용을 부가하는 등의 확대가 이루어진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조를 채택함으로써, 아리우스파나 네스토리안주의, 가현설, 사베리우스주의,

아폴리나리스주의호모이우시오스주의자들을 배척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이 신경은 니케아 신경성자성부와 '본질에서 같다[同質]'고 말한 데서 나아가 '성부와 일체'라고 고백하며, 성령


위치와 존재를 확대 설명하고, 교회성사, 육신의 부활, 영생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다. 또한 니케아 신경 말미에 들어있던

 이단파문 선언을 생략하여 전례용으로 적합해졌다는 특징이 있다.

신약성경의 언어인 코이노니아 그리스어로 작성된 신경은 각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5세기시리아에서 성찬전례에 도입된

스페인을 통하여 서방 교회에서 사용되었다.

이 신경은 현재에도 동방교회서방교회 지역을 막론하고 신앙고백의 기준이 되는 신경이다. 동방 정교회, 천주교회,

성공회의 전례용 신앙고백문이며, 침례교, 재림교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회에서도 사도신경과 더불어 예배

신앙고백문으로 활용한다. 침례교, 안식교, 오순절교 일부와 급진적인 재건주의 기독교를 제외한 기독교 각 교파에서 그

권위를 인정한다. 서방교회 전통에서는 성경강독 이후 신앙고백으로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또는 사도신경

하나를 외운다.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에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만도(저녁기도)에는 사도신경을 사용한다.


  1. 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 전능하시고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나이다.
  2. 그리고 또 오직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세대에 앞서 성부로부터 나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시며, 빛으로부터 나신 빛이시요,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참 하나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일체이시며, 만물이 다 이 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음을 믿나이다.
  3.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성령으로 또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으며,
  4. 본디오 빌라도 시대에,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묻히심을 믿으며,
  5. 성경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6.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7.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라 믿나니,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8. 그리고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니, 성령은 성부께서 쫓아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공경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9. 하나인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10. 죄를 사하는 하나의 세례를 알고 믿나이다.
  11. 죽은 이들의 부활과,
  12. 후세의 영생을 굳게 믿고 기다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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