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주요 사건열전 -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한 신학자 터툴리안(AD 200년 경)
- 작성자 : Henry Park
- 21-07-19 14:49
9. 터툴리안-삼위일체 교리를 수립한 라틴 법률가 (AD 200년 경)
이 변증론자는 2세기에 가장 신학적인 사고를 하였던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는 헬라어보다는
처음으로 라틴어로 글을 썼으며 그랬기 때문에 라틴계의 신학이나 서방의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앞으로
보게되겠지만 그는 또한 수 세기 후에 다가올 위대한 삼위일체 회의와 교리를 예상하고 준비하였다.
터툴리안은 2세기 중엽(AD 150-160)에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거주하는 로마인 가정에 태어났다. 그는 법률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였고 성년이 되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크리스찬이 된 직후 그는 외부에서 기독교를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변호하고 교회안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데 자신의 예리한 법률가로서의
재질을 활용하였다. 그는 구약과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과,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신앙, 임박한 세계
종말에 근거한 극단적이면서 금욕적인 도덕에 몰두하였으나 결국 가서 그것들을 넘어서 지금도 계속되는 신의
계시를 믿는 특성을 가진 몬타니즘(창립자 Montanus의 이름을 딴)으로 알려진 기독교 종파를 받아들였다. 이 종파는
끝내 정통 교회에 의해 비판을 받았는데 터툴리안은 정통 교회를 향해 이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나타내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가 죽은 때(주후 220-225년경)와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나이가 많아
자연사 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순교자로 생을 마쳤다는 주장도 있다. 그는 “우리가
(박해자들에 의해) 더많이 죽임을 당하면 당할 수록 더 많은 숫자로 우리는 불어날 것이다. 크리스찬들의 피는
씨앗이다” (변증록(Apology, 50)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터툴리안의 문체나 수식어들은 법률 문서와 같은 정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재치와 조롱과 빈정댐, 논쟁과
격렬한 흑백논리 그리고 단호함이 들어 있다. 그는 결코 “흐리멍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코 사과한 적이 없는
변증론자였다.” 터툴리안은 매우 똑똑하였지만 성경에서 지적한대로 (디모데 후서 2:24-25, 디도서 3:2, 베드로 전서
3:15)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데에는 조금 인색하였던듯 하다.
그는 광범위한 주제들에 대하여 30여권 이상의 많은 저서들을 집필한 놀라운 다적(多作)의 집필가였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주제의 하나는 크리스찬의 도덕성과 기대치 이하의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크리스찬들을 어떻게
다룰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회개에 관하여(On Repentance)’란 책의 주제로 그가 충실한 정통 교회의 신도일
때 쓴 것이다. 사실 그는 그의 민감한 도덕성때문에 몬타니즘에 매료되었다. 그는 몬타니즘에 귀의한 다음에 “겸손
(modesty)에 관하여”란 책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실제적인 크리스찬들의 문제인 기도, 세례, 금식 그리고 여인들의
복장 등에 관한 책들도 여러권 썼다.
변증론자로서 그는 기독교를 변호하는 데에는 져스틴이나 이레니우스와 같은 노선을 따랐다. 그러나
지적(知的)으로는 그들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한편 터툴리안은 져스틴에 맞서서는 냉혹하리만큼 크리스찬들이
철학을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이교에 대한 처방(Prescription Against Heretics)’에서 그는 유명한 질문을 던졌다.
“아덴이 예루살렘에서 관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카데미와 교회 간에 무슨 일치점이 있는가? 이교도들과
크리스ㅊ판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는 심지어 철학은 항상 이단으로 인도한다고 시사하였다. 그의 ‘처방’은
성경을 이해하거나 하나님에 관해 이해하는 수단으로 철학을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피하라는 것이다. 이레니우스와
마찬가지로 터툴리안은 그의 ‘이단에 대한 처방’ ‘헬모게네스(Hermogenes)에 반대하여’ 그리고 “발렌티누스 추종자들
(Valentinianss)에 반대하여’ 등에서 일반적으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공격하였으며 특별히 영지주의를 공박하였다.
터툴리안의 가장 오래된 저서는 ‘마르시온(Marticon)에 반대하여’라는 5권으로 된 책이다. 여기에서 터툴리안의
비난의 대상인 마르시온은 2세기에 아주 영향력이 컷던 교사로 그가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인물이다. 예를 들면 마르시온은 “구약의 하나님은 화를 잘내고 복수를 하시며 유대인 만을 편애하고
예배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그러나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이 많고 은혜로우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요,
예배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구별하였다. 그는 구약성경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신약성경 가운데도
유대인들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되는 예를 들면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히브리서 같은 것들은 거부하였다. 그는
대부분의 누가복음서를 받아들이고 바울의 대부분의 서한을 받아들이되 그의 목회서신(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
들은 제외하였다.
터툴리안의 가장 큰 공헌은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것으로 그 내용의 대부분이 ‘프랙시아스 (Praxeas)에 반대하여’
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프랙시아스의 관심은 2신론(아버지와 아들은 2개의 신이다)이나 3신론(성령은 제3의
신이다)에 반대하여 유일신론을 옹호하려는 것이었다. 단일신론(monarchianisms)은 이러한 관심에서 나온 것으로
그것은 ‘유일한 통치’는, 모든 것을 통치하는데는 궁극적으로 둘이나 셋이 아니라 오직 유일한 통치자가 있을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프랙시아스는 한 분인 진정한 하나님은 세개의 다른 역할이나 방식, 즉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견해를 ‘그리스도 양태론 (modalism)’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이디어는 하나님의 ‘신비’들을 신비롭게 하였기 때문에 매력적이었다. 우리들은 모두가 한 사람이지만 나는
아들이요, 형제이며,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선생이며, 글쓰는 사람이요, 물건을 고치는 사람이라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하나의 신적인 인격, 하나님이란 존재에 대한 적절한
이해인지는 의문이다, 아니, 잘못된 것이다.
터툴리안은 이와 관련하여 ‘천부수난설’(Patripassianisms)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수난”이란
뜻으로 터툴리안에 의해 ‘양태론’을 거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만약 ‘그리스도의 양태론’이 옳은 것이라면 아버지는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은 분이시다.? 문제는 하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이시다.
더구나 양태론에 의하면 에수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당신은 나를 버리셨습니까?”(마태복음 27:46) 하고
부르짖었을 때 그는 아들은 곧 아버지니까 실제로는 자신에게 부르짖은 것이다.(프랙시아스에 반대하여 30).
예수님이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누가 22:42)”라고 말했을 때에도 실은 “내 뜻대로 마시고
그러나 내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말한것이다. 양태론은 이러한 경우 전혀 합리적인 설명이 될 수 없으며 세개의
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머리가 나타나서 서로 그들이 담당한역할을 하였다(예수의 세례와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의 기도를 비교해 보라)는 다른 복음서 이야기들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터툴리안은 프랙시아스의 견해를 반박하였을 뿐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그의 삼위일체론을 천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이 교리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뿐 아니라 여러 세기동안 사용되었던 용어들을 만들어내고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터툴리안은 삼위일체(trinitas)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질량을 언급하면서 이 논쟁에서 처음으로 본체(substanti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터툴리안은 인격(persona)이라는
용어도 역시 사용하였다. 라틴어의 본래 의미는 ‘배우들이 연극에서 맡은 배역을 보여주기 위해 뒤집어 쓰는 ‘가면
또는 마스크(mask)’이다. 그리스도의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지의 형상화를 이용하여 한 배우가
단지 가면을 바꿔쓰면서 여러가지 역할을 나타낼 수 있듯이 한 개체이신 하나님도 여러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터툴리안은 여러가지 형상을 보여주는 한 배우가 아니라 연극에서의 여러가지 배역을 강조하기 위해
‘인격(persona)’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관중들은 그들이 무대에서 행동하고 반응하는 방식에서 보듯이 배역들이
그들의 관계에 의해서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될것이다. 같은 배우가 무대에서 동시에 두개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위에 언급한 복음서의 이야기에서 보여준바와 같이 창조와 역사와 구원의 무대에서 똑같은 역할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세례를 받으셨다. 아버지는 말로서 예수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신분을 밝혔고
성령은 비둘기로 예수 위에 내려왔다.(마태복음 3장 16-17)어떻게 한 배우가 세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가?
도리어 하나님은 그의 일치에 덧붙여서 그 일치 가운데 구별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러한 구별은 그들의 관계를 통한
증거이며 그것들을 “인격들”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 가운데도 역시 내포되어 있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될 수 있으며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말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복음 10:30) 그러므로 터툴리안의 도움이 되는 용어를 사용하면 하나님은 하나의 본체
(substance)를 가졌으나 세 개의 인격체(persons)이다.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하여 논의할 때 소개하였던 같은 용어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논의에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 그 전에 그러한 문제들을 다루었던 사람들 보다도 문제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하나의 ‘본체’와 세개의 ‘인격’-아버지, 아들 그리고 영인데 반해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격’에 두개의 ‘본체’,
신성과 인간성이시다. 터툴리안이 주장했듯이 예수가 진정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한가지 이유는 하나님은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육신을 가진 진짜 인간만이 죽을 수 있다. 만약 영지주의 크리스찬들이 주장하듯이 예수는
인간으로 나타내 보였을 뿐 이라면 그의 죽음 역시 단지 실제인듯이 보였을 뿐이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거기에는 죄나
구원을 위한 진정한 희생이 있을 수 없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은 예수의 진정한 인간성이지 그의
신성이 아니다.
터툴리안은 이러한 설명의 많은 부분들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그점이
바로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신이 세상에 대하여 ‘바보’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을 믿지 않고는 ‘현명’해 질 수가 없다.. .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말이기 때문에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매장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5) 이와같은 놀라운 진실들은 결코 인간의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신의 실재임에 틀림 없다.
터툴리안의 사상은 아주 찬란한 것이었지만 수 세기 후까지도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첫째로 몬타니즘
(몬타니즘에 대해서는 추가 초기교회의 이단들에서 자세히 논하겠다.)에 동참해서 정통 교회를 비판했기 때문에
서방에서는 정통 크리스천들에 의해 무시당했기 때문인듯 하다. 두번째로는 그가 희랍어 보다는 라틴어로 글을 썻기
때문에 동방 크리스찬들에게는 간과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각과 그의 용어들은 공의회에서
채택되었고 지금 우리들이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도신경에도 삽입되었다. 비록 터툴리안의
문체들이 거칠고 저급하기는해도 그의 사상은 신학의 발전에 있어서, 특히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과 신(神), 인(人)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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