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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주요 사건 열전 - 초대교회에 대한 Q & A



  1. 초대교회의 시기는 언제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초대교회라 하면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들을 자연적으로 떠 올리게 된다.

하지만 교회 역사가들은 통상적으로 초대교회의 시기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사도시대의 교회와 속사도 시대의 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사도 시대의 교회들은 사도들,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살아 생전 교회들을 설립하였거나 목회했던 교회들을 일컫는다. 즉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사도 요한의 죽음 이전의 교회들을 사도시대의 교회라 칭하며, 사도들의 제자들이 설립하였거나

목회한 교회들을 속사도시대의 교회들이라 칭한다. 즉, 로마의 클레멘트, 서머나의 폴리캅,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지금의

 프랑스 리용의 이레니우스등, 2세기까지의 교회들을 속사도 시대의 교회라 칭한다. 즉, 예수님의 승천이후 부터 2세기까지

의 교회들을 초대교회라 정의한다.

     

  1. 초대교회의 목회자들의 명칭은 무엇이며, 어떻게 목회자가 되는가?

성경에 나오는 목회자의 명칭은 다양하다. 감독, 장로, 목사가 신약성경에 나오는 목회자의 명칭이다. (로마 천주교회의

주교, 추기경, 교황등의 명칭은 5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사실 위의 목회자의 세 명칭은 직분에 있어 동일하다.

우리가 직책과 직분을 구분하듯, 때에 따라 목사, 장로, 감독으로 불렀다.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스스로 소개하기를 장로라

 하였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나 디도를 목사라 칭하였다. 이들의 직책을 직분으로 구분하자면, 지교회를 치리하는 입장에서

 장로라 불렸고, 설교하거나 가르칠 때는 목사 내지 교사라 불리웠으며, 대외적으로 교회를 대표하여 공식적인 어떤

목회자의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할 때는 감독의 자격으로 임했던 것이다.

 

  1. 초대교회의 목회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목회자가 되는가?

초대교회에서 지교회의 목회자가 되는 길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사도시대적 교회에서는 첫 번째, 사도의 권위로 지교회에 자신의 제자를 추천하여 지교회의 목회자로 파송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자신이 개척한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그레데 교회에 디도를 파송하여 목회하게 한 것이다. 또한

 단독 목회자를 두기에 재정적으로 힘든 지교회들은 사도들이 써준 추천서를 가지고 한시적으로 목회하게한 순회

목회자들이 있었다. (마치 오늘날 감리교회에서 연회의 감독이 목사를 지교회에 파송하듯이)

두 번째로는 목회자가 필요한 지교회에서 주위의 명망있는 목회자에게 추천을 의뢰하는 방법이다. 지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들이 추천을 의뢰하고 추천받은 목회자를 지교회에서 청빙하는 방법이다. (마치 오늘날 장로교 노회에서 지교회 당회의

의뢰를 받아 목사를 파송하듯이) 세번 째로는 교리학교등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자들을 지교회 내에서 혹은 외부에서

목회자로 추천하여 주위의 목사들에게 안수를 의뢰하여 목회자로 삼는 방법이다.

(마치 오늘날 침례교의 청빙 방법과 유사하다.)  


  1. 초대교회는 세례를 행하였는가, 아니면 침례를 행하였는가?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인가?

성도들이 목회자들에게  흔히 묻는 질문들 중 하나가 아마도 어떤 방법의 세례가 더 성경적인가  하는 것일게다. 답을 드리면


둘 다 성경적이며 어느 것이 다른 것 보다 더 성경적이란 답 자체가 성경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있다.

초대교회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심지어 사막을 여행 중에 있던 자가 세례를 원하면 집례자가 고운 모래 가루를 머리에 뿌린

 기록도 보인다. ’예수만이 유일한 중보자시요,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으로 예수외엔 구원이 없다’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즉, 신앙고백적 행위를 중요시 하는 교회와 그 교회를 목회하는 자는 대부분 머리에 물을 뿌리는(sprinkled)세례를

선호하였으며, 마치 ‘물에 온전이 잠김으로서 육은 죽고 물속에서 다시 나오는(immersion), 새 생명의 의미를 강조’하는

목회자는 침례를 강조하였다.

고대 북아프리카 지역의 초대교회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을 볼 거 같으면 같은 유적지에서 세례기구와 침례를 행했던

침례 통이 동시에 발굴되는 것을 보게된다.  초대교회에서는 아마도 자유롭게  취사선택을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심지어

침례 통이라도 요즈음 온전이 몸을 잠그는 그런 방식이 아닌, 침례 통속에 들어가 꿇어 앉은 자세로 집례자가 물을 머리부터

부어 온몸에 물이 흘러가게 하는 방식이 가장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초대교회 시대가 지난 후, 로마제국의 핍박으로 인하여  

배도한자들이 다시 교회에 들어오는 자들의 처리문제로, 특히 교회의 지도자로서 배도한 후 다시 교회로 들어오는 경우

이들의 처리 방법 문제로 급격한 대립이 야기케 되었다. 진정으로 자복하고 교회에 다시 들어오려면 반드시 재세례(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소위 말하는 도나티스트 운동이 벌어지게 된다. 이 도나티스트 운동이 격화되면서 재침례를 강하게

주장하게 되고 도나티스트 운동이 사라진 후에도 오늘날까지 간간이 세례와 침례논쟁이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 초대교회에서는 세례의 방법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종교개혁 운동이 심화됨에 따라  특히 지금의 스위스

지방에서 일어난 재침례파와 영국에서 발전된 침례교파기 생긴 후 부터 세레냐 침례냐 하는  논쟁이 생긴 것은 심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세례냐 침례냐 따지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는 신앙고백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1. 초대교회의 성도가 타 지역으로 이주할때는 이주한 지역교회의 출석이 자유로왔는가?

요즈음 성도들이 자유롭게 교회를 이적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초대교회는 성도들을 엄격히 관리해 왔다. 세례받기 전의

교인을 ‘준교인’ 즉, 학습교인으로, 세레받은 자를 ‘교인’으로, 그리고 유아세례 명부를 철저히 관리하였다. 타지역으로

이사갈 때는 반드시 그 교회를 떠나는 사유와 이사가는 지방 이름을 명시하고 목회자의 이름과 서명날인이 있는 교인

천거서, 소위 현대 장로교에서 말하는 이명서를 반드시 제출하여야만 하였다. 이명서가 없을 경우 성도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성찬식에의 참여도 거부당하였고, 다시금 세례를 받아야 했다. 교회의 성도로 인정되지 않으면 많은 경우

새로운 지역에서 고율의 세금이 부과되었고, 심지어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상당히 제약되었다. 그러므로 이명서가 단순한

교적의 이동이 아닌 신분증 이상의 역할을 상당한 기간동안 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이명서에는 이명서의 유효기간이 반드시

적혀 있었다.  


  1.  초대교회에서의 분쟁을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사소한 분쟁의 경우에는 지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들의 권위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윤리적 이거나 도덕적인 문제로

야기되는 지교회의 분쟁은 장로들의 권위로 대부분 해결되었음을 볼 때 현대 교회의 치리가 사라져 감은 안타까울 뿐이다.

목회자나 장로들이  말씀대로 살지 아니함으로 교회의 권징이 사라지게 됨을 교회의 지도자들은 회개하여야 한다.

교리적 해석의 차이로 야기되는 분쟁은 지역 내 교회들의 지도자들이 각 교회 감독의 자격으로 참석하여 해결을

도모하였다. 여기에서도 해결이 요원한 경우에는 소위 말하는 공의회에서 해결하였다. 요즈음 장로교회의 당회, 노회, 총회,

다른 교단에서 개교회, 지방회 혹은 연회, 총회에서 해결을 도모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1. 왜 기독교는 타 종교들과 비교하여 그렇게 많은 핍박들을 받아 왔어야만 하는가?

a. 기독교는 정치적 세력들로 핍박을 받아 왔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 국가적으로 공인된 종교가 약 300여 종교에 달했었다. 국가 공인 종교가 되려면 두 가지를 반드시

행해야 했으니 모든 종교의식에 앞서 로마 황제를 자신들의 종교의 살아있는 현인신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로마황제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어야 했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로마황제를 자신들의 종교의 최고 제사장으로 인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로마제국의 정복전쟁으로 정복한 지역의 종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받아 들이고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의식을 행한 후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승인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기독교 만은 위의 의식을 거부함으로

필연적으로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로마제국 이후에도 사람을 신으로 추앙하는 모든 나라들에서 동일한 핍박을 받아

왔으며, 근세에 일본제국 주의의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한국교회가 받은 핍박과 공산주의 아래에서 핍박받은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다..    


b. 기독교는 철학을 추구하는 세력들로 부터 핍박을 받아 왔었다.

서양에서 철학의 위치의 중요성은 상상을 추월한다. 오랫동안 철학은 특히 헬라 철학은 모든 학문의 최고 점에 있었으며

(중세에는 신학, 철학, 수사학, 의학, 수학, 기타 학문 순으로 순위를 매겼다.) 철학자들은 사회의 존경을 독차지 해왔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철학을 초등학문으로 비교하는 내용이 성경에도 기록된 것처럼, 독점적 위치에 있던 철학이 신학

아래의 위치로 떨어지자 철학자들의 자존감이 이를 받아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피타고라스 학파와 에피큐리온

학파의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대단했었다. 근세에 들어와서도 거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반기독교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c.  기독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배타적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 왔었다.

한 예를 들어보자.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왔을 때 한반도에 있던 고유 신앙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각 사찰에 가보면 불교와 하등 상관 없는 칠성각이 있는게 그 좋은 본보기이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을 숭배하던 신앙이 불교와 공존하는 모양으로

오늘날까지 있는 것이다.

심지어 로마 천주교도 마찬가지이다. 19세기 초반 조선에서 천주교는 엄청난 박해를 당하였다.  조선의 양반들이 조상

제사를 거부하고 심지어 신주를 불태우기 까지 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800여명의 로마천주교회 신자들이 조상 제사 거부로 인하여 목 베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일본의 침략과 삼국동맹의 결성으로 일본과 각별하게 지냈던 무솔리니의 영향 아래에 있던 교황 비오11세는 조상숭배는 더

이상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유교 문화와  타협하는 조서를 내림으로 오늘날 한국의 천주교인 대부분이 조상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초기의 조선 천주교인들은 개죽음?을 당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성경에 위배되는 그

 어떤 사회적, 문화적 타협을 거부함으로서 에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이 너희(교회)를 미워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된

셈이다.

오늘날에도 종교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즉, 합리주의와 상대주의, 뉴 에이지 운동, LGBT 등등 쉼없이 밀려오는 파도

처럼 기독교가 당면한 문제들을 순교적 각오로 싸워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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