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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한국선교사 열전] 53- Hugh Linton(휴 린턴, 인휴) 선교사


Hugh A. Linton(린턴) 인휴 선교사- 1926년 한국출생

                                박신호선교사와 함께 인애자 선교사 자택을 방문(2017)

                                                                                           1960대에 찍은 인휴선교사 가족


5남 1녀의 자녀들은 중학생이 되면 107문답의 소요리 문답을 외워야했고, 암송하다 틀리면 매를 맞았다. 삶의 가치관

정립을 위한 휴 린튼만의 교육방법이었다. 전라도의 많은 섬과 벽지에서 활약하며 초교파적으로 600여 곳이 넘는 교회를

개척했던 그는 개척초기의 교회들의 자립을 위해서 운영비의 20%를 지급하며 자립을 돕는 등 남도의 마을 입구마다

세워지는 교회 십자가의 불빛을 세상을 향해 비추이게 하는 밑거름이 되주었다. 1962년 순천 일대의 큰 수해로 인한

결핵을 막기 위해 부인 인애자 선교사와 함께 결핵진료소와 요양원를 세우기도 했다. 휴 린튼이 선교사역에 역점을 둔 반면,

아내 로이스 선교사(인애자)는 의료 봉사 활동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로이스는 결핵 퇴치에 목숨을 걸었다. 수많은

이재민과 결핵 환자가 급증했다. 자녀들까지 폐결핵에 걸려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결국 1965년 입원 요양이 필요한

결핵 환자의 진료를 위해 ‘결핵 요양원’이 설립되었고, 무의탁 결핵 환자들을 위한 요양원인 ‘보양원’이 세워졌다.

인휴 선교사는 1984년 4월 10일 뜻밖의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음주운전을 하던 버스와 추돌사고로 휴린튼 선교사는 오랜

복음의 도구였던 짚(Jeep)차를 운전하던중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게 된다. 광주 기독병원까지 숨막히는 후송이

이루어지지만 택시에 실려가는도중 소천했다. 이 사건후 그의 아들 인요한 박사는 한국형 Ambulance 보급사업을

펼쳤으며, 순천은 한국에서 가장 좋은 엠블런스 운영 체제를 갖추게 된다. 사고당시 휴 린튼은 지프차에 농촌 교회 건축에

쓰일 자재를 실은 트레일러를 달고서 시골교회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의 죽음이 그의 가문이 가지고 있는 선교역량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못했다. 휴린튼의 아내였던 로이스 선교사는 한국인의 결핵 치료와 예방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공로로

1996년 호암상을 받았다. 이때 받은 상금 오천만 원이 존 린튼(인요한) 박사의 한국형 앰뷸런스 개발과 보급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죽어서도 한국민을 위한 한국민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주고 갔다. 그의 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은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터라 1948년 대학 설립 준비에 착수했었고, 1950년 전쟁으로 설립이

지연되었지만 1954년부터 2년여의 준비후 1956년 대전에 대전대학(나중의 한남대학)을 설립했다. 이 기간중에 자신의

몸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윌리엄 린튼은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받고도 완치가 되기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학

사업을 마무리 한다. 1960년 좋지 않은 건강에도 여전히 학교일에 열정을 불태웠고, 주일은 시골 교회에 나가 봉사하기를

쉬지 않았다. 휴 린튼의 아버지 윌리엄 린튼은 21세에 내한하여 48년 동안 500개의 교회를 세웠고, 그의 아들 휴 린튼은

남도의 섬 오지와 산간 벽지를 순회하며 600여개의 교회를 세웠다.

린튼 선교사 가문과 한국과의 인연은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유진 벨 선교사로부터 따지면 4대에 이른다. 인휴 목사의 아들

스티브(한국명 인세반)는 1994년 유진 벨 재단을 설립, 북한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모두 400억 원이 넘는

의약품과 의료 장비를 북한에 지원했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그는 1997년부터 5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김일성

주석도 수차례 만난 북한 전문가로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또 그의 동생 존(한국명 인요한ㆍ50)은 한국에서 태어나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국 토종’이다. 두 형제는 모두 한국여성을 부인으로 맞았다. 미국의 세계적 생명공학기업인

‘프로메가(PROMEGA)’ 대표인 빌 린튼 3세(62)는 윌리엄 린튼 목사의 장손(長孫)으로 인세반, 인요한과는 사촌 간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설립한 한남대를 2004년 방문해 500만 달러 재정지원을 약속했고, 이후 한남대에 프로메가 BT 교육

연구원이 설립됐다.

이밖에도 린튼 가문은 1995년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인도주의단체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Christian Friends of

Korea:CFK)’를 설립해 의료와 식량, 농기계, 비상구호품, 우물개발기술 전수 등 인도적 지원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박흥배 목사
안디옥 세계선교협의회 회장
왈브릿지 열방교회 담임목사
revpark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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