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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고신역사 아카이브] 41. 해외 고신총회들: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


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

41. 해외 고신총회들: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

고신교회의 신앙과 정신은 한국전쟁 후 미국 유학의 길이 열리면서 미국으로 건너갔고, 1960년대 중반에는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 파견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갔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 유학생들이 해외 교포교회 목회를 시작하면서 해외 한인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0년대에 대양주로도 건너갔고, 유학을 마친 이들이 뉴질랜드에서 교회를 개척, 이민 교회 목회가 시작되었다. 고신교회는 설립 70주년을 맞이하는 이즈음 해외에 재미총회, 유럽총회, 대양주총회를 두고 있다.

재미총회 한국전쟁 후 미국 유학을 떠난 이들중에 미국에서 현지교단에 속해 목회했는데, 교회가 늘어나면서 고신교회에서 받은 신앙을 교단적으로 이어가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1978년 한명동 목사와 박상순 목사가 미국에 방문하면서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안식년으로 미국에 체류하던 이근삼 교수의 생신을 맞아 고신인 모임이 시작되었다. 제3차 고신인 모임이 모이던 1985년 11월 11일부터 사흘간 필라델피아 근교 포코노수양관에서 모여 재미총회를 창립하였다.

재미한인예수교장로회총노회는 뉴저지제일한인교회(박재영), 산호세한인장로교회(신현국), 필라 초대교회(임종수), 템피교회(전재린) 등 네 교회가 참여하였고, 타교단 교회에서 목회하던 이들을 포함하여 목사 13명, 강도사 1명이 모여 발기총회를 개최, 총노회 헌장 초안위원을 선정해 창립총회를 준비했다. 11월 12일에 재미한인예수교장로회 총노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헌장 초안위원들이 제출한 총회 규칙을 받고, 총노회장에 박재영 목사를 선출하였다.

총노회는 출범 초기에 회원들의 총의를 모으기 위해 기획위원 제도를 도입해, 집단지도체제로 이끌었다. 재미총회 고려신학대학원은 1992년 다미선교회 열풍에 홍반식, 이근삼, 오병세 교수를 초청해 공개 신학 강좌를 개최하였고, 이근삼 박사가 고신대총장 은퇴 후 미국으로 이주, 재미고려신학대학원을 거쳐 에반겔리아대학교를 설립해 신학교육을 담당하였다. 제4회(1988) 총노회에서 동부노회와 서부노회로 분리하고, 총회로 승격하였다. 재미총회는 오늘날 남미, 동부, 북서, 서부, 서중, 수도, 중남부, 중부노회 등 8개 노회에 135교회가 속해 있다.

재미총회에는 SFC가 활동적인데, 1979년 8월 15일부터 나흘간 주여 ‘나를 새롭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Eastern College에서 첫 수양회를 개최하였다. 1999년 제1회 전국대회를 개최한 이래 매 4년마다 개최하도록 했는데, 그동안 COVID-19 팬데믹으로 모이지 못하다가 내년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재미총회의 교회들은 1992년 7월 27일부터 8월 1일까지 시카고 휘튼대학 빌리그레함센터에서 개최된 세계한인선교대회에 선교사들의 여비와 참가비를 부담하는 형식으로 선교대회를 지원해 제1회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이것이 제3회 대회부터 KPM 세계선교대회가 되었다.

유럽총회 고신교회는 제31회 총회의 결의로 교포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을 선교사로 인준하여 파송하였는데, 이러한 제도는 유럽총노회의 출발과 정착에 기여하였다. 1980년대 이전에 고신교회 인사에 의해 설립된 교회는 화란한인교회, 쾰른중앙교회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제일스페인교회 등 세 곳이었다.

1981년 9월 제31회 총회에서 유럽의 첫 선교사로 파송받은 김은수 목사는 1979년 4월 쾰른중앙교회를 개척한 후 독일 병원 선교의 도움으로 최한주, 이송신, 박의석, 전원호 목사 등이 유럽 한인교회를 개척, 목회하였다. 1986년에 유럽고신목회자협의회를 조직하였다. 상호교류와 친목으로 목회자들이 교제하면서 교회와 목회를 위해 치리회 구성의 필요성에 공감하여 1987년 3월 17일에서 이틀간, 독일 아헨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유럽 고신총노회”를 조직하였다. 이때 고신교회는 바르셀로나제일스페인교회(도만기)와 라스팔마스제일교회(김학우) 두 교회 뿐이었다. 총노회가 회집되어 황상호 목사를 초대 유럽 고신총노회장으로 선임하였다. 유럽에 정착한 목회자들은 총회에서 교포교회를 목회하는 선교사로 파송받아 교회 개척이나 선교지 확보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 제도는 제46회 총회(1996)에서 교포선교사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첫 유럽 고신총회는 제1회 유럽 총노회 조직 후 15년이던 2002년 4월 2일부터 6일까지,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순회하면서 개최했다. 유럽총회는 피레네산맥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어 북쪽은 중부노회, 남쪽 스페인, 포르투갈, 동쪽으로는 터키, 남쪽으로는 북부 아프리카와 서부 아프리카까지 포함하고 있다(김학우 목사). 유럽총회는 그동안 국내교회와 협력하여 유럽의 거점 도시에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왔으나 큰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유럽총회는 독일 박의석, 스페인 도만기, 김학우 목사 등이 중심을 이루었다. 유럽에서는 미국과 달리 대규모 이민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학생들이나 상사, 지사 근무자들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귀국했기 때문에 교회의 성장과 목회의 활성화도 한계가 있었다.

대양주총회 대양주총회는 1979년 홍관표 목사가 호주장로교회 소속의 한인장로교회의 초청을 받아 시드니에서 목회를 시작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1981년 시드니한인중앙장로교회를 개척했는데, 이후 유학생들이 정착해 고신교회가 증가하면서 대양주총회가 형성되었다. 주일학교 연합회 조직, 노회의 확장, 제2차 세계선교대회 개최, 코람데오신학대학원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들 세 해외총회 외에도 포쳅스트룸대학교 유학생 배굉호 목사에 의해 요하네스버그한인교회가 시작되었고, 그가 귀국한 후 정은일 목사가 목회하며 아프리카 대륙의 중심 한인교회가 되고 있다. 외국서 목회하는 이들중에는 현지인 교회에 속하거나, 다른 총회에 속해 목회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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