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도목사 칼럼] “해방될지 알았으면 그랬겠나?”
- 작성자 : HesedMoon
- 15-08-14 01:39
“해방될지 알았으면 그랬겠나?”
영화 ‘암살’을 봤습니다. 친절하게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필라델피아까지 찾아와준 영화이기도 하고, 최근 재미있는 영화들을 계속 만들고 있는 최동훈 감독의 영화이기도 해서 얼른 보고 말았습니다. 재미있었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한 장면에서 가슴이 탁 막혀버렸습니다. 좋은 장면과 대사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그 장면에서는 동의할 수 없었고, 그 대사를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세 사람은 모두 독립 운동과 일정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염석진(이정재)은 한 때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가 체포당해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밀정이 됩니다. 밀정 생활이 탄로 나자 일제의 경찰이 되어 정보를 팔고 독립군들을 체포하는 일을 합니다.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하자 대한민국의 경찰로 변신하여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안윤옥(전지현)은 비록 친일파의 딸로 태어났지만 무장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서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여성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자신에게 부여되었던 친일파 처단의 임무를 잊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은 독특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일합방에 서명했던 대한제국의 각료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친일파 각료들의 아들들과 함께 모여 친구들의 아버지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을 서로 죽이기로 결의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처절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불의한 일을 자행한 사람일지라도 아버지들을 죽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술로 세월을 보내거나 잡혀서 투옥당하거나 극 중 하와이 피스톨처럼 염세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한 때 자신의 양심에 찾아온 가치를 따라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 청년의 가슴에 찾아온 절대적인 가치는 ‘독립’이었습니다. 그에 반대되는 가치는 당연히 ‘친일’이며 ‘매국’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한 때 생명을 걸고 총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청춘을 조국의 독립이라는 가치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 염석진은 결국 그 총을 민족을 향해 겨누었습니다. 원수에게 처절하게 패배하고 보니 원수보다 더 악한 삶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가치를 지키는 일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반역사적 가치를 선택하여 안락한 삶을 누렸습니다. 반면 안윤옥은 가치에 끝까지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친일 매국의 삶을 선택했던 아버지 앞에서도 당당했고, 해방 이후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는 친일파를 처단하는 일에도 당당했습니다. 가치에 헌신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척박함을 함께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마지막 주인공인 하와이 피스톨은 한때 가치를 선택했지만 그 가치대로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입니다. 일제시대,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수많은 지식인들이 그랬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제국의 힘 앞에 그들은 패배하고 절망하고 증오했습니다. 가치가 무너진 삶을 살았습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듣고 공부하고 생각하면 누구나 바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양심에 찾아온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치에 헌신하는 삶이란 늘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그 가치를 위해 물질을, 관계를, 생명까지 헌신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는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저의 마음을 답답하게 막았던 대사가 있습니다. 해방 후 한국 경찰의 간부가 되어 살던 염석진을 반민족특별 위원회에서 기소하여 재판정에 세웁니다. 그는 피치 못할 선택이었으며 자신은 오히려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고 강변합니다.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증인이 살해당하고 그는 무죄가 되어 풀려납니다. 서울의 거리를 자랑스럽게 활보하는 염석진, 그에게 두 사람이 찾아옵니다. 한 사람은 염석진이 배반했던 동지였고, 다른 한 사람은 안윤옥이었습니다. 그들은 16년 전, 임시정부의 수반이었던 김 구 선생이 내렸던 명령을 실행합니다. 염석진이 일본의 밀정이면 죽이라고 했던 명령입니다.
안윤옥이 그에게 묻습니다. “왜 동지들과 민족을 배반했는가?” 염석진은 자비를 구하면서 대답합니다.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지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지 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나...” 가장 현실적인 대답이면서 정말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수많은 친일부역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양심에 찾아온 가치는 독립이지만, 그 가치가 실현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치에 반대되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하아...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해방이 될지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양심에 찾아온 가치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치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확신, 비록 그 가치가 내 삶에 성취되고 나에게 영광을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가치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으므로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가치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천박한 양심이 그로 하여금 민족과 동지를 배반하게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해방되지 않은 삶을 살았고, 민족의 해방을 가로막는 일을 했으며, 해방 된 뒤에도 조국의 미래를 여전히 친일의 사슬에 묶어두는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가르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양심을 가르치고 양심에 찾아온 가치를 따라 사는 삶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삶의 요령이 아닌 참된 가치를 선택하고 헌신하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해야겠습니다. 영화 한 편 보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역사는 늘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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