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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이응도목사 칼럼] “꼭 한 사람은 있다!”


“꼭 한 사람은 있다!”


미국으로 유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학교 가까이에 있던 한 교회의 부교역자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계속 하던 일이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맡겨진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저녁 예배를 마치고 교회당을 나서는 길이었습니다. 청소와 정리까지 마치고 나가는 길이라 성도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교회당 입구에서 주차장으로 가고 있는데 저보다 앞서서 몇 분의 여집사님들이 수다를 떨면서 가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한 여집사님이 다른 누군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다른 여집사님들은 깔깔대며 웃고 있었습니다. “꼭 한 사람은 있어... 나랑 정말 안맞아... 도대체 왜 그런지 몰라... 이해가 안돼...” 평소에도 주장이 좀 강하고 목소리가 컸던 그 여집사님은 그날도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박수치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제 차 앞으로 가서 그 분들에게 의례적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집사님들, 안녕히 가세요!” 그런데 그 모든 여집사님들이 “엄마야!” “어마나!”를 외치면서 후다닥 자기들 차로 뛰어갔습니다.

다음 날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 상황이 이해되었습니다. 목소리가 컸던 여집사님이 말했던 자기와 정말 안맞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저였던 것입니다. 자신과 상식이나 성품에서 혹은 일을 하는 방식이나 원칙에서 잘 맞지 않는 사람.... 사사건건 부딪히는 사람,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질 수 없는 한 사람.... 저였습니다. 실은 그 집사님은 교회에서 꽤 활발하게 많은 일을 하는 분이었고, 한국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역시 의욕적으로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던 저와 여러 가지로 부딪혔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한국 교회를 섬길 때 어린 전도사 시절부터 교역자로 대접을 받으면서 사역을 감당해 오다가 거친 이민 교회의 부교역자에 대한 태도에 분개해서 나름대로의 저항을 하고 있던 터라.... 그 여집사님의 눈에 많이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랐고, 10년 이상을 부교역자로 섬기면서 단 한번도 성도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나이 차이도 그리 많이 나지 않는 분이었는데 자신이 그 교회에서 결코 친할 수 없는 한 사람으로 저를 지목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험담을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역시 이민 교회는 나와 맞지 않는건가....?’ 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났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분이었지만 또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품을 가진 그 집사님과 저는 오래지 않아 많은 일을 협력하는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겪어 보니 교회에 정말 필요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제가 훈련받은 환경과 미국 이민 사회의 환경이 많이 달라서 제 생각을 바꿔야 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다행히 그 분 역시 저에 대한 태도를 바꿔줬습니다. 한번은 제게 찾아와서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목사님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고, 자꾸 한국식으로 일하시려는 것 같아서 싫어했었어요. 하지만 함께 일해 보니 성격도 잘 맞고 많이 배우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이후에 제가 그 교회를 떠나기까지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신영복 교수는 윗층 아이들이 내는 층간 소음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면서 불평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조언했다고 합니다. “너무 괴로우면 조용히 이사를 가십시오. 그런데 이사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윗층에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그 집 아이들과 친해지십시오. 그 집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아는 사람이 만드는 소음은 아마도 견딜 만 하실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 참 중요한 지혜가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 매우 관대합니다. 하지만 내가 거리를 두고 판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매우 준엄한 잣대를 댑니다. 친해지고 이해하면 아주 작은 문제인데, 거리를 두고 평가하면서 미워하고 적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나와 안맞는 사람이 꼭 한 사람 있다!”고 했던 그 집사님은 또 다른 교회로 가서 그런 사람을 만나서 마음껏 미워하고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집사님과 저는 서로 좀 친해지고 이해하다보니 적어도 서로가 가장 안맞는 사람이 되어 불편하게 교회를 섬기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장점도 많고 도움 되는 것도 많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돕고 협력할 수 있는 좋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혹시 교회를 섬기시면서, 직장에서 정말 나와 잘 안맞는 한 사람이 있습니까? 좀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면 어떨까요? 더 이해하고 품어주면 어떨까요? 내가 불편해 하는 만큼 그도 나를 불편해 하고 있고, 내가 힘든 만큼 그도 힘들 것입니다. 내가 가까이 가는 만큼 그도 가까이 올 것이고, 내가 이해하는 만큼 그도 나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잘 안맞았던 그와의 화평한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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