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편집인 |
사람은 있을 때보다 떠날 때 진정한 인생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사람의 귀중함도 떠나보면 깨닫는다고 하지 않는가? 살아 있는 동안 온갖 구설수가 있을 수 있고 실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났을 때 평가하는 평가는 진정한 것이다.
우리가 허순길 하면 작은 영웅이며 영원한 교수로 기억한다. 6개월 전 산소호흡기를 달고 유언하듯 당신이 평생을 몸 바친 고려신학대학원 강당에서 후학들에게 유언적으로 학교의 장래를 걱정하며 논문을 발표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허박사님은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마무리 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장례식장은 이제 이 세상을 향해 말씀을 못하시는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 말씀하고 계셨다. 참으로 특이한 장례식장이었기에 조문 온 모든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3무(三無)였다.
우선 영정이 없다. 무슨 뜻일까?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 있을 것이다. 사진으로 보여진 그 사람 허순길을 그리 애틋하게 기억하거나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는 뜻일 수 있다. 이제는 천국 사람이 되었으니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니니 잊어버리고 당신들의 삶이나 열심히 살라는 교훈일 수 있다. 아니 사진으로 보여진 그 허순길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도 담겨졌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부의금이 없다. 천국 가는 길에 노자돈이 필요 없다는 뜻일까? 그런 미신적 생각 보다는 이제는 아무 돈도 필요 없는 세상으로 가셨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유족들에게 돈으로 위로하려 하지 말고 본인도 그런 식으로 위로 받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오히려 위로가 될 것이라는 마음도 담고 있다고 보여 진다.
조화 역시 설치하지 않았으며 또한 사양한다고 했다. 흔히 영정을 국화꽃으로 단장하고 단상은 온통 꽃으로 꾸며서 망자를 미화하려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고 상술로 이를 적극 권하는 것이 장사꾼들의 술책이다. 장례 한건에 얼마의 수입은 저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대체로 이름 있는 분들의 장례식은 그보다 더 엄청난 계산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헌화하는 것도 없애버렸으니 허박사님은 그런 장사꾼들을 낙심하게 만들었다.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용 당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모든 장례 절차는 오직 고인의 유언에 따라 그대로 진행한다고 유족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유족들에게 당부하기를 입관예배니 장례예배니 하는 것은 불필요하니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교회적인 장례예배는 로마교 적이라는 인식을 가지신 것이다. 교회는 산자와 더불어 일하고 산자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죽은 자에 대해서는 교회의 책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례는 교회적인 일이 아니라 가족적인 일이기에 이에 맞게 행해져야 한다고 유언을 남기신 것이다. 허박사님의 장례식장은 장례식장이 아니라 특강의 강의실이었다.
만약 목회자들이 이를 교훈으로 받고 실천에 옮긴다면 점차 이런 운동은 전체 교회로 확산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의 가정은 장례비용의 절감 혜택을 단단히 누릴 것이며 목회자들은 잦은 장례식으로 오는 목회적 피로를 한층 덜 수 있게 될 것이다.
故 허순길 박사, 그는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가르치는 삶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셨으며,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서도 한층 높은 무료특강을 하시고 천국에 가신 제1호 천국박사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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