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Translation

총회게시판

인터뷰

김종혁 유까딴 선교사

  • 작성자 : 4
  • 12-06-30 00:05

주님 사업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 유카탄 농촌을 이룩한 김종혁 선교사와 이영숙 사모

김종혁 선교사(예수교 장로교 합동 해외총회 소속)는 ·멕시코 유까딴 반도 한인 제1회 선교사, ·12년째 최장기 사역, ·현지 선교사 중 72세로 최고령, 이 세가지 외에 자기 전재산을 정리, 사역에 투입한 드문 자비량 선교사이기도 하다.
왜 유까딴 이었나
어떻게 유까딴(Uucatan)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냐는 기자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라면서 웃고 만다. 그의 유까딴에 대한 애착과 그 곳에 정착하게 된 연유에는 조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등 중동지역과 홍콩, 베트님, 필리핀을 비롯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민이 거주하는 20여개 나라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유까딴에서 100여 년 전에 이곳으로 이민 온 한국인 후예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그의 첫 유까딴과의 인연이었다. 세계의 흩어져 있는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은 그런대로 본국과의 교류, 지리상으로도 가깝게 지내고 있지만 유까딴의 한인 후예들은 오랫동안 잊혀지고 멀리 떨어져 살아왔음을 알고나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사역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6년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된 그는 90년대 초에 미주총신대학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게된다. 그리고 1996년에 멕시코의 유까딴 반도 Melida 지역으로 그의 아내와 함께 떠나게 된다. 그 때 그의 나이 60세.
기자가 만난 뉴저지 거주 그의 한 친지는 이영숙 사모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영숙 사모는 이화여자대학을 졸업한 좋은 집안의 규수로 여자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재직했지요. 연세대 출신인 김종혁의 아내가 된 이래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남편을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멕시코 선교지로 간다 했을 때도 불평없이 따라나서는 모습을 보였지요. 환갑 나이에 좀 쉬는가 했는데.... 그 곳에서 얼마나 일을 했는지 땅을 일구느라 손가락이 모두 굳어서 지금도 잘 펴질 못해요.” 그래서 김선교사보다 이영숙 아내의 평생 순종이 더 돋보인다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고 성경대로 돕는 배필의 사명에 충실했던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유까딴에서의 선교 전략
1900년 초 첫 한국인 농업이민 1033명이 멕시코 유까딴 반도에 상륙 한 후 그 후손이 지금은 수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백년 넘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의 한국인 정체성은 거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유까딴 반도에서 활발했던 “애니껭 산업”(대형 선인장의 일종인 애니껭에서 섬유를 추출해 내는 산업-선박 및 공업 용 Rop(밧줄)제조에 사용됐다)에 투입되어 열악한 환경속에서 억압적이고 거의 농장노예같은 대우를 받으며 고생했던 초기 멕시코 이민자들의 당시 실상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이종혁 선교사는 이들 한인 후예들에게 들어가 “유까딴 농촌” 단지를 조성하고 아직까지 애니껭 농사에 의존하고 있던 이들에게 선교사가 일찌기 배우고 기술개발을 해왔던 분재지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이론 섬유의 개발로 에니껭은 더 이상 각광을 받을 수 없었고 전환이 필요했던 이들 한인 후예들에게는 흙과 식물의 관계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가진 선교사에게서 고급채소와 화초, 분재의 기술을 배우고 선교사는 이들에게 복음을 심어 나갔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160여명의 신실한 크리스천 전문 농업지도자들을 양성해 냈다고 김선교사는 말했다.
한편으로는 ▲ 지역별로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 5개 교회가 현지 신학교에서 배출되어 김 선교사가 지원하는 목회자들이 이끌어 가고 있다.
▲ 선교지의 주인은 선교사가 아니고 현지 주민이다. 그들의 문화, 관습, 민족성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낙천적이고 비록 약속이 허술하고 책임감에 문제가 있지만 받아 들이고 이해한다. 그것은 만족적 성품이기도 하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빨리, 빨리”에 대해서 서양 선교사가 “좋지 않습니다. 천천히 하시요”라고 한다고 우리가 고쳐지겠는가?
▲ 따로 신학교 설립 필요없다. 기존 학교를 지원하고 영성있는 복음적이 일꾼들을 선발하여 목사와 교사로 양성하는 데 전적으로 투자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라나는 아이들을 다음 세대의 크리스천 지도자로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그들의 민족적 정서를 이해하며 격려해준다. 그래서 신학교와 교회 학교의 악기 후원에는 특별히 많은 재정을 사용해 왔다.
▲ 과달루뻬 마리아에 대한 우상숭배는 복음전파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정면 돌파를 피하고 인내와 끈기로 지혜롭게 계몽해 나간다는 것이 유까딴에서의 김종혁 선교사의 주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재산정리
선교지에 전액투입
이러한 사역을 위해서는 상당한 재정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국에 재산이 좀 있었지요”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수 년 전에 한국의 전재산을 정리하여 선교 기금으로 전액을 투입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미주에 5개 후원 교회와 친지들의 후원이 있고 이들 교회에서 여름철 단기 선교팀들이 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선교재정은 선교사 자신의 자산으로 충당해 나간다고 했다. 어느 정도 자산이냐는 질문에는 “꽤 된다”라고만 말하면서 세계로 퍼져나간 한국 선교사들의 물질 관리에 대해 염려되는 부분을 언급했다.
▲ 선교지에서 경제적 지원은 필수이고 중요한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물질 관리에 임해야 된다.
▲ 경제적 후진국이라고 물질적 교만으로 그곳 백성과 지도자들을 내리 누르는 사례가 많다. 네 것도 내 것도 아 하나님의 것으로 교만해지거나 우월감을 나타내서는 안된다.
▲ 그래서 선교사의 자질과 소명의식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실제로 심각한 지역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오는 새해에는 모든 선교사들이 진정으로 선교지를 주님의 심정으로 섬기며 어려운 세계 경제를 잘 대처해 나가기 위해 기도 운동과 실천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그의 소신을 피력했다.
김종혁 선교사 내외는 미주 후원교회방문을 위해 2개월간의 휴가를 끝내고 2월 초에 선교지로 돌아간다.
권문웅 기자

댓글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