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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교사 열전] 13- Dalzell A. Bunker(달젤 벙커, 방거 房巨) 선교사 편


방거 선교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Dalzell A. Bunker (방거, 房巨) 선교사  )1886년 입국

벙커 선교사는 미국 오하이오 주 (Ohio) 애쉬타뷸라 시(Ashtabula) 에서 출생하여(애쉬타뷸라시는 필자가 거주하는

왈브릿지에서 2시간 20분 거리이다.), 오하이오 주 오벌린 대학(Oberlin College)을 졸업하고, 뉴욕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이 무렵 조미통상조약(1882)이 체결된 후여서 구 한말 조선정부는 근대 교육기관인 육영재단을 설립하고

필요한 교사를 미국에 요청했다. 유니온 신학교는 이에 졸업반인 벙커와 길모어(G. W. Gilmore), 재학생인 헐버트(H.B.

Hulbert) 등 세 명을 추천하였다. 이들 세 명의 교사는 미국 북 장로회 교육 선교사로 1886년 7월 4일 내한했다. 일행

중에는 엘러스(A. Ellers, 나중에 벙커의 부인이 됨.)와 길모어 부인이 포함되어 일행은 5명이었다.


벙커 선교사는 육영공원에서 고관 자제들과 관리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으며, 육영공원이 폐쇄될 때(1894년)까지 8년간

교사로 봉직하였고 그 후 배재학당으로 옮겨 미 감리회 소속 선교사로 활동했다. 아펜젤러 선교사 순직(1902년)후

배재학교의 학당장이 되어 1911년까지 교육 발전에 열성을 다하였으며, 후임자 신흥우에게 교장 자리를 인계했다. 그는

종래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 방법을 개선하여 근대 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고대사, 물리학, 화학, 수학, 정치학 등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했다. 1892년 3월에는 교육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3품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그는

1896년 독립문 정초식이 거행될 때 윤치호가 작사한 국가(國歌)를 스코틀랜드 민요 ‘로렐라 이’에 맞춰 학생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는 등 한국 최초의 애국가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옥중(矯導所) 전도를 통하여 인권을 보호하고, 민족 지도자들을 개종시켰다. 1902-1904년 독립협회

지도자 이상재, 남궁억 등과 이승만, 신흥우 등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투옥되었다. 이때 정부의 허가를 받아 감옥을

출입하면서 그들의 석방운동과 인권운동을 펴는 한편, 수감자들을 매주 만나 위로하고 신앙상담과 예배를 드렸다. 성경을

비롯한 기독교 관련서적과 과학, 철학, 역사 등 서적을 감옥에 넣어 주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이상재, 이승만 등 민족

지도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옥중 전도와 연계하여 감옥 안에 학교가 개설된 사례도 있었다. 그 당시

투옥 되었던 신흥우의 아버지 신면휴(申冕休)는 "아들 흥우가 옥에 갇혀 마 땅히 징역을 치를 것이지만 힘에 겨운 일을

시키지 아니하고 다른 죄수들과 같이 책을 읽게 하고 글도 쓰게 했다”는 ‘옥중개학전말(獄中開學顚末)’이 전해지고 있다.


벙커는 1890년 6월 한국 성교서회(The Korean Tract Society) 창립위원으로 활동했고, 그는 초대 서기 겸 회계 및 찬송가

편찬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08년 자신의 선교 사역을 계속하면서 성서 보급을 위하여 미국 성서공회 책임자로

활동했다. 1896년 이후에는 동대문교회에서 목회 활동도 했다. 1905년 9월 11일에는 교파를 초월한 기구로 “한국

복음주의 선교단체 연합 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 in Korea)”를 조직하여 하나의

한국 교회 연합을 지향하는 역사적인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하여 시해되고 고종 황제는

극도의 불안 상태에 있을 때, 벙커, 게일, 언더우드, 에비슨 선교사가 번갈아 왕실에 들어가 고종 황제를 호위하며 왕의 신변

보호에 최선을 다하기도 했다.


그후 1926년 7월 4일 73세의 노령으로 선교사직에서 은퇴 하여 부인과 함께 귀국했다. 1930년 한국에 잠시 방문

하였으며, 1932년 11월 28일 80세로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별세했다. 그는 숨을 거두면서 ‘나의 유골이나마 한국

땅에 묻어 달라’  유언하여 그 부인은 남편의 유해를 가슴에 안고 한국으 로 돌아와 1933년 4월 8일 정동제일감리교회에서

고별 예배 를 드리고,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Until the day dawn the shadows free away.(날이 새이고

흑암이 물러갈 때까지)”라는 어구가 기록되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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