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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한국선교사 열전] 10- Mary F. Scranton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 편


Mary F. Scranton(메리 스크랜턴)선교사-1885년 입국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미국 감리회 여선교부 최초의 조선 여 선교사이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의사인 아들 스크랜턴 선교사와 그리고 아펜젤러

부부와 함께 1885년 조선 땅을 밟는다. 당시 대부분의 조선여자는 이름도 없었다.

1886년,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1명의 거지 여자아이를 시작으로 여자 학교를 설립한다. 그것이 오늘날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학당이다. 오늘 날의 연세대, 이화여대 등 처음엔 몇 명으로 시작했다. 설립한 이의 비전이 결국 성취되어지는

것을 본다. 스크랜턴 선교사의 말이다. “나는 믿고있다. 이곳에서 이 땅 조선의 여인들이 인간의 권리를 찾는 문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바라는 것, 말씀을 믿고

바라는 그것이 실상이 되어 든든한 건물이 세워지고 그 건물 속에서 어느 나라 여성보다도 당당한 딸들이 늠름하게 걸어

나올 날이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다.”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의 비전이 오늘날 성취되어서 이화여대

뿐 아니라 한국의 여성 기독교육에 큰 변혁을 가져온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Massachusetts) 벨처타운(Belchertown)에서 1832년 12월 9일 출생하여, 1855년 윌리암 T.

스크랜턴(William T. Scranton)과 결혼하였고, 외아들을 낳았다. 1872년에 남편과 사별하고 1884년 52세의 늦은 나이에

미국 감리회에서 한국에 파송하는 여성 첫 선교사가 되었다.

아들 윌리암 B. 스크랜턴과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희귀한 역사’를 이룩하며 한국에 왔다. 입국 경로는

1885년 2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2월 27일 일본에 도착, 잠시 머물었다가 1885년 6월 20일 내한했다.


당시 근대 의료시술을 받기 어려웠던 한국 여성들을 위해 미국 감리회 지원을 받아 1887년 서울 정동에 병원을 세우고

여의사 메타 하워드(Matta Howard)를 초빙, 여성 진료를 시작했다. 이듬 해 고종 황제는 여성을 보호하고 구하라는

의미의 ‘보구여관’이라는 이름을 하사했고, 그 이름처럼 질병과 인습에 고통 받던 많은 여성들을 보호하고 구했다.

보구여관은 여성 의학 교육의 최초 현장이기도 했다.


1892년 보구여관 의사 로제타 홀(Rosetta Hall)이 다섯 명의 조선 여학생을 선발해 의학교육을 시작했으며, 1900년

볼티모어 의대를 졸업한 한국 최초 여의사 박 에스더(김정동)가 탄생됐다. 현재 이화대학 부속병원의 시초가 된 이 보구여관

(1887~1912)→ 릴리안 해리스 기념병원(1912~1930)→ 동대문 부인병원 (1930~1945)→ 이대 동대문 병원

(1945~2008)→ 이화 의료원(1973~)으로 이어진 130년의 역사가 오늘날 약 4,300명의 의사를 배출한 최고의

의과대학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1886년 5월 31일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으로 이화학당을 설립했다. 당시 학생은 1명이었다. 김 부인이라는 어느

고급관리의 작은 댁으로 왕비의 통역관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입학했으나 석 달을 못 채우고 학교를 떠났다. 그 후 ‘별단이’

라는 학생이 입학했다. 1886년 11월에는 한옥 교사(校舍)를 완성하여 이사했다.

1887년에는 학생수가 7명이 되어, 민비는 교육사업의 의의를 인정하고 정부가 승인한다는 의미에서 김윤식을 통하여

“ 이화(梨花)”라는 교명의 편액(扁額)을 하사했다. 학생수가 늘면서 2층의 붉은 벽돌집을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으며 스크랜턴 선교사를 대부인이라 호칭했다. 1908년 5월 31일에는 이화학당 초대 ‘메이 퀸’으로

추대되었다.

이화학당은 표면적으로는 교육기관이었으나 선교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동제일교회 초대 여성 교인은 거의

이화학당 학생이었다. 상동교회에서 전도부인을 대상으로 단기 성경교육을 시작한 것이 후일 협성신학교로 발전했다.

1903년에는 수원 삼일학교(매향학교)를 설립하므로, 수원, 공주지역의 지방 선교활동이 시작되었다. 교회가 설립되었지만

여성들을 교육할 인력과 시설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여성 선교 사업을 계획하고 이에 대한 인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스크랜턴 선교사는 한국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서 열정적으 로 복음을 전하고 여성교육에 진력했다. 그의 저서(단행본)로는

《그리스도 셩교문답》《지구 약론》등이 있다.

1909년 10월 8일 새벽 상동 자택에서 77세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한국의 젊은 여성을 위한 사업(교육·선교)의 선구자중 한사람이었다. 다년간 충실히 봉사하고 그가 선택한 한국에서 많은

좋은 일들의 향기와 기억을 남겼다.”고 에비슨 박사는 추모했다.

비문에는 “오늘 이 땅에 자유 사랑 평화의 여성 교육이 열매 맺으니, 이는 스크랜턴 선교사가 이화동산에 씨 뿌렸기

때 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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