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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재미총회 40년] 7. 재미총회의 설립자들


7. 재미총회의 설립자들

                                                                                             나삼진 목사(Evangelia University 교수) 

2024년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뉴저지 안디옥교회에서 회집되었던 재미총회 제40회 총회에서는 기념예배와 기념 음악회를 갖고, 창립총회 참석자들 가운데 생존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였다. 그러나 창립총회 자리에 있었다고 설립자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고, 총회 회원은 목사 장로로 구성되는 정치원리도 있다. 재미총회 설립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어떤 분들일까?

재미총회 조직에 핵심적인 역할은 박재영 목사가 했다. 재미총회 조직 이전부터 한국총회의 지도자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그의 집은 거처하는 곳이었고, 이근삼 박사가 고신대학생들이 연루된 미문화원방화사건의 책임을 지고 고신대학장에서 물러나 미국에 머무는 동안 뉴저지의 작은 교회에서 설교목사로 있으면서 주로 그의 집에서 지냈다.

박재영은 연세대 재학 중 전국SFC 위원장을 지냈으며, 그가 고려신학교 강사로 가르치던 중 교수회에서 그를 기독교교육 교수 요원으로 추천되어 미국의 고든신학교에 유학, 재학 중에 템플대학의 신학교와 통합되어 고든콘웰신학교가 되었다. 그는 1970년 목회학석사와 종교교육학석사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그가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려 할 때 고려신학교 대학부 교수들과 이사장 송상석 목사가 충돌하는 학내 사태가 발생하여 친구들 대부분이 학교를 떠나면서 고려신학교 대학부 교수로 부임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미국 이민 문호가 열려 뉴저지지역에 한국 간호사들이 대거 취업해 왔는데, 이들을 위한 통역과 생활지원 등 봉사를 하던 중에 1971년 뉴저지제일한인교회를 설립, 31년을 시무하고 2001년 11월에 정년 은퇴하였다. 그는 재미총회 창립총회와 제10회 총회장을 지냈고, 동부 고려신학교를 설립해 교장으로 봉사했고, 《재미총회 10년사》와 《재미총회 20년사》를 편찬하였다.

신현국 목사는 연세대학교를 수학한 후 칼빈대학을 거쳐 고려신학교(제23회)를 졸업하고, 삼일교회에서 한상동 목사 문하에서 부목사로 일했다. 그는 한국교회 1세대 유사기독교 전문가로서 고려신학대학 강사로 가르쳤고, 한국총회에서 3년 동안 회록서기와 서기로 일하였다. 1983년 제33회 총회에서 미국 선교사로 파송되어 산호세한인장로교회에서 목회하였다. 그는 재미총회 제2회와 제12회 총회장을 역임하고, 서부고려신학교를 설립하여 신학교육을 하였다. 신현국 목사는 은퇴 후 이근삼 박사가 별세한 후 2007년 에반겔리아대학교 제2대 총장으로 선임되어 12년간 재임했다.

김만우 목사는 연세대학교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경기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전국SFC 초대 간사를 지냈으며, 1979년 선교사로 파송되어 필라델피아제일교회를 시무하면서 SFC에 대해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일하였고, 중동선교에 한흑선교와 중동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제4대 총회장과 제12회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전재린 목사는 고려신학교 제9회(1955) 졸업생으로 대구성밖교회 시무 중 장남 전태진의 초청으로 아리조나로 이민을 왔고, 피닉스한인장로교회를 개척해 시무하면서 고신노회가 없어 CRC교단에 가입하였다. 그 교회를 시무하던 중에 대학생 전도를 위해 설립한 템피장로교회를 재미총회 설립과 함께 가입하였고, 오레곤삼일교회도 개척하였다. 그는 제3대 총회장을 역임하였고, 회고록 《한미개척40년사》가 있다.

이들 4인 외에도 재미총회 설립의 동기를 부여했던 에반겔리아대학교 설립자 이근삼 박사와 재미총회의 설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박상순 목사도 이 반열이라 할 수 있다, 박상순 목사는 고려신학교 제5회 졸업생으로 캐나다로 이민해 교회를 설립하고 재미고신노회 조직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노회 구성요건이 맞지 않아 한국총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 캐나다에서 은퇴한 후 나성삼일교회의 청빙을 받아 시무한 바 있고, 자서전으로 《용광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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